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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내 걸음의 끝은 마음에 있나니 / 李 箕 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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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의 풍경 / 서양화가 임철순, 2007


 

내 걸음의 끝은 마음에 있나니


不然  李 箕 永


인생 사는 것을 길을 가는 것에 비유한다. 길을 잘 들어서야 된다고 하고, 
길을 잃고 딴 길로 가지 말아야 한다고도 한다. 길에 대해서 이것은 정도(正道)요, 
저것은 사도(邪道)다 하는 말도 있다.

 길을 잘 간 사람 보고 하는 말일까. 길을 잘 아는 사람 보고 하는 말일까. 
‘도통(道通)했다’는 말도 있고 ‘도인(道人)’이란 말도 있다. 아마 그 사람도 
아직은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일테니 길을 잘 가버린 사람은 아닐 것 같다. 
다만 길을 잘 알고 익숙해 있어 걸리는 일 없이 잘 왔다갔다 한다는 정도의 
뜻이 있을 것이다.

『반야심경』 끝머리에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리 사바하’라는 주문이 
있다. 나는 의미를 모르고 외우는 일에는 익숙치 못한 사람이다. 
그래서 ‘신묘장구대다라니(神妙章句大陀羅尼)’라는 『천수경』에 나오는 다분히 
힌두교 냄새가 나는 주문도 인도학자하고 협력해서 뜻을 해석해 본 일이 있다. 
어쨌든 ‘아제 아제’는 내가 그 뜻을 알고 난 뒤 무척 좋아하게 된 ‘다라니’이다. 
산스크리트 원어를 찾아보니 해석이 된다. 길 가는 사람과 관계가 있는 문구이다.

      gate gate pāragate pārasamgate bodhi svāhā 
       가떼 가떼 빠아라가떼 빠아라상가떼 보디 스바아하아

길고 복잡한 설명은 생략하고 의역해 보면 이렇다.

     ‘가신 님이여, 가신 님이여, 저쪽으로 가신 님이여,
     저쪽으로 완전히 가버리신 님이여, 깨달음이여 영광이 있으소서!‘

여여(如如)한 곳으로 가신 분을 ‘여거(如去)’라 한다. 이는 여래(如來)와 마찬가지로 
깨달으신 분 곧 부처님을 호칭하는 다른 말이다. ‘여거’가 여여한 곳으로 가신 분을 
뜻하고 ‘여래’가 여여한 곳으로부터 오신 분을 뜻한다면, 부처님에도 가신 분과 
갔다가 다시 오신 분이란 두 가지 측면의 차이가 있다 할 것이다.

‘저쪽으로 갔다’(pāragate)라는 것은 이 고통의 바다인 세간(世間)의 속박을 
벗어났다는 이야기이다. 곧 출세간(出世間)이다. 그러나 거기가 궁극적 목표는 
아니다. '저쪽 즉 피안(彼岸)에 완전히 가 버렸다’는 것은 이 세상을 버리고 어디 
다른 시간과 다른 공간으로 갔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출세간에서도 다시 뛰쳐 
나왔다는 뜻이다. 출출세간(出出世間)이란 말이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의 온갖 
제약에 얽매이지 않게 된 마음가짐으로 다시금 이 세상 속에 들어와 멋지게 산다는 
뜻이다.

여여(如如). 거기가 말하자면 목표인 셈이다. ‘여여’. 그것을 또 다른 말로 깨달음, 
보리(菩提, bodhi)라고 한 것이다. 깨닫고 사는 삶을 말한다.

길을 간다는 것은 어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가는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어디로 가고 있다는 것인가? 그는 이미 가 버린 사람인가? 아직도 가고 있는 
사람이란 말인가? 대답은 이미 돼 있다. 그는 가고 있는 사람이다. 하나의 길을 
더 갈 데 없는 끝까지 가 버렸다. 그리고 나서 그는 다시 그 길에 돌아와 전혀 
다르게 새롭게 그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아제 아제…’는 바로 이런 님의 삶, 깨달음의 삶, 자비로운 삶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합장하고 외우라고 지은 글이다. 요술쟁이 마력이 달라붙어 있어 외우면 
복을 받는 글이 아니라, 그토록 잘 갔고, 또 잘 갔다가 다시 와서 가고 있는 그 님
처럼 되기를 간절히 원하며 살면, 외우는 그 사람도 그렇게 그 길을 잘 갈 수 있으
리라는 보장을 해 주는 글인 것이다.

     行行本處 至至發處
     가도 가도 본래의 그 자리요. 왔다 왔다 해도 출발한 그 자리다.

의상대사가 이런 말을 남기고 갔다. 참 의상대사는 벌써 가신 지 오래됐지만,
원효대사와 함께 항상 내 곁에 계신다. ‘아제 아제’를 통해 여여함이 내 인생의 
목표가 되었듯이, 의상대사가 남긴 말씀들은 내가 가는 모든 길에서 언제나 
등불이 되고, 지팡이가 되고, 안내자가 되고 있다.

나는 위의 글을 지난 날 청담(靑潭)스님 장례 때 만장에다 써서 스님의 영원한 
생명을 기린 적이 있다. 요새도 많이들 이 세상을 하직하고 허공계(虛空界)로 
돌아가는 선례를 보이고 있다. 부디 미련일랑 갖지 말자고 다짐하고 싶어진다.

할 일을 못 다했거나, 잘못 살았거나, 한(恨)이 많이 남는 인생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 편안히 가기란 어려운 일이다. 세상사(世上事) 귀찮은 일, 괴로운 일, 
슬픈 일 다 눈감으면 사라져 없어지는 것,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죽음의 공포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못 다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만 
범한 죄의 아픔때문에 더욱더 커지는 것이 아닐까? 좋은 일했다고 극락에 가는 
것이 아니고, 나쁜 일 많이 했다고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며, 본래 그 자리 
출발한 그 자리에 있는 것이건만 망상(妄想)의 나래가 나를 하늘 높은 곳으로 
붕 떠오르게 하기도 하고 지하 삼천척(三千尺)으로 전락하게도 하는 것이다.

위의 의상대사 말씀은 그의 명저(名著)인「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
의 정신을 한 마디로 요약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이 세상의 갖가지 것들이 
제각기 자기의 길을 가며 나름대로의 삶을 산다. 그 갖가지 것들이 보여주는 
해프닝을 법(法)이라고 한다. 그 법들의 집합체, 그 법들의 세계를 법계(法界)
라고 한다. 그 하나하나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은 법계의 개체들이 사실은 
다 진행형이요, 과정이지 완결된 완료체가 아닌 것이다. 이를 일컬어 돌고 돌고 
있다고 한다.

한 인간의 일생은 가고, 자식들이 대를 잇고, 거기 꼭 같은 것의 재현은 없으나 
유사한 것의 진행이 있다. 실제 생리적인 아들딸은 아니더라도 심리적인 아들
딸들이 있다. 느슨한 관계지만 같이 살다 보면, 이런 영향과 가피(加被), 또는 
은혜 속에서 풍속이 생기고, 문화가 생기고, 시대 의식이 달라지고 지역 감정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래 봤자 손오공이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재주를 
부리는 것처럼 인간들의 욕심은 허망한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길들을 다녔던가? 유학길, 장사길, 그냥 주마간산 여행길, 
전쟁으로 끌려다니던 길, 외교관이 다니는 화려한 길, 해외도피의 길…….

나도 그 중의 몇 가지 길들을 다니며 꿈을 키우기도 하고, 이을 악물기도 하고, 
한없는 행복감에 젖어 보기도 하고,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겪어야만 했다. 
나에게는 그 밖에도 많은 길이 있었고, 지금도 길이 있어 그곳을 걷고, 차로 
다니고, 비행기로 다니고, 상상의 나래로 오고 가고 한다. 학교 가는 길, 복도, 
엘리베이터, 기차나 고속버스, 인도(人道), 다 길이다. 길속에 또 길이 있는 
것이다. 가고 있고, 가야 하고, 지켜야 하는 법, 살려야 하는 원칙, 소중히 
받들어야 하는 이치, 그것도 모두 다 길인 것이다.

35년쯤 전이었을까. 내가 프랑스에 있을 때, 파리의 한 아가씨에게서 받은 
카드의 글귀가 생각난다. 폴 클로댈의 글이었다. 포플러나무 가로수가 높이 
솟은 포장되지 않은 길의 그림이 있고 그 밑에 이렇게 씌어 있었다.

     “사람들이 너도 나도 이용하지만 그리고는 잊어버리고 마는 길.”

그렇다. 길은 말이 없다. 원망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쓰면 길이 되고, 
안 쓰면 숲이 되고 말 것이다. 원효가 말했다. 
“마음의 문이 열린 사람들에게는 눈앞의 모든 것이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 아님이 없고 문 아님이 없다"고...

                                                      1992년 11-12월 「길」
                                                <내 걸음의 끝은 마음에 있나니>
                                                        - 한국불교연구원 刊 ‘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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