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이야기 - 빈 집에서 푸닥거리하기^^
페이지 정보
본문
여호수아 7~8장에서 일부를 발췌해보겠습니다.
1. "아이"라는 곳을 점령하기 위해서 먼저 정탐을 시작합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사람을 벧엘 동쪽 벧아웬 곁에 있는 아이로 보내며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라 하매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를 정탐하고" (여호수아 7:2)
2. 전초전으로 한판 붙었으나 이스라엘 백성 36명이 죽고 도망한 후, 여호수아가 바짝 쫄았던 모양입니다.
"아이 사람이 그들을 삼십육 명쯤 쳐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쫓아가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으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7:5~6)
3. 전초전 패배에 대한 책임을 원시적 주술행위로 해결합니다. 누군가가 부정한 행위를 했기 때문이라며, 돌도 던지고 화형식도 거행했던 모양이군요. 정말 아름다운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여호수아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오늘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물건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7:25)
4. 야훼가 작전을 지시합니다. 복병을 매복하여 빈집털이를 할 계획인 모양입니다.
"너는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하되 오직 거기서 탈취할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가지라 너는 아이 성 뒤에 복병을 둘지니라 하시니"(8:2)
5. 야훼의 작전 지시에 의해 멋진 승리를 거둔 모양이군요. 한쪽 편에서는 아이의 군사를 유인하고 복병이 멋지게 빈집털이를 하였고, 이후는 바이블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다 때려 죽였다고 자랑하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그의 손을 드는 순간에 복병이 그들의 자리에서 급히 일어나 성읍으로 달려 들어가서 점령하고 곧 성읍에 불을 놓았더라"(8:19)
"그 날에 엎드러진 아이 사람들은 남녀가 모두 만 이천 명이라"(8:25)
6. 그러나 고고학의 발굴 결과는 웃기지 말라고 말합니다.
-----
학자들은 예루살렘 북동쪽 산간 지방의 동쪽 측면에 위치한 키르베트 에트-텔의 대형 언덕을 아이의 고대 유적지로 간주했다. 벧엘 바로 동족에 있는 이 유적지의 지리적 위치는 성경의 설명과 거의 일치한다.(중략)
프랑스에서 교육받은 팔레스타인 전문 유대인 고고학자 유디트 마르케트-크라우제는 1933년과 1935년 사이에 에트-텔에서 대대적인 발굴작업을 진행하여 후기 청동기 시대에 가나안 사회가 붕괴되기 1000년 이상 전인 초기 청동기 시대의 거대한 도시유적을 찾아냈다. 후기 청동기 시대의 토기 파편이나다른 주거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1960년대에 이 유적지를 다시 발굴했을 때도 결과는 같았다. 여리고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이 정복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대에 아이의 유적지에는 주민이 살지 않았다.
---<성경 : 고고학인가 전설인가> 104쪽~105쪽 -
초기 청동기 시대 BCE 3500~2200
중간 청동기 시대 BCE 2200~2000
중기 청동기 시대 BCE 2000~1550
후기 청동기 시대 BCE 1550~1150 (바이블에 기초한 여호수아 정복전의 시기)
철기시대 1기 BCE 1150~900
철기시대 2기 BCE 900~586
바벨로니아 시대 BCE 586~538
페르시아 시대 BCE 538~333
---<성경 : 고고학인가 전설인가> 33쪽 ---
-----
아무도 살지 않던 아이성에서 정탐-전초전 패전-화형식 거행-야훼의 작전지시-매복 성공 및 12000명 학살을 했다고 진술하는 바이블에 따르면, 야훼의 명령을 받은 여호수아와 아이들은 폐허 위에서 뻘짓을 꽤 심하게 한 모양입니다. ^^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6-10 21:40:36 자유토론방에서 복사 됨]
1. "아이"라는 곳을 점령하기 위해서 먼저 정탐을 시작합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사람을 벧엘 동쪽 벧아웬 곁에 있는 아이로 보내며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라 하매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를 정탐하고" (여호수아 7:2)
2. 전초전으로 한판 붙었으나 이스라엘 백성 36명이 죽고 도망한 후, 여호수아가 바짝 쫄았던 모양입니다.
"아이 사람이 그들을 삼십육 명쯤 쳐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쫓아가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으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7:5~6)
3. 전초전 패배에 대한 책임을 원시적 주술행위로 해결합니다. 누군가가 부정한 행위를 했기 때문이라며, 돌도 던지고 화형식도 거행했던 모양이군요. 정말 아름다운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여호수아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오늘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물건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7:25)
4. 야훼가 작전을 지시합니다. 복병을 매복하여 빈집털이를 할 계획인 모양입니다.
"너는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하되 오직 거기서 탈취할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가지라 너는 아이 성 뒤에 복병을 둘지니라 하시니"(8:2)
5. 야훼의 작전 지시에 의해 멋진 승리를 거둔 모양이군요. 한쪽 편에서는 아이의 군사를 유인하고 복병이 멋지게 빈집털이를 하였고, 이후는 바이블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다 때려 죽였다고 자랑하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그의 손을 드는 순간에 복병이 그들의 자리에서 급히 일어나 성읍으로 달려 들어가서 점령하고 곧 성읍에 불을 놓았더라"(8:19)
"그 날에 엎드러진 아이 사람들은 남녀가 모두 만 이천 명이라"(8:25)
6. 그러나 고고학의 발굴 결과는 웃기지 말라고 말합니다.
-----
학자들은 예루살렘 북동쪽 산간 지방의 동쪽 측면에 위치한 키르베트 에트-텔의 대형 언덕을 아이의 고대 유적지로 간주했다. 벧엘 바로 동족에 있는 이 유적지의 지리적 위치는 성경의 설명과 거의 일치한다.(중략)
프랑스에서 교육받은 팔레스타인 전문 유대인 고고학자 유디트 마르케트-크라우제는 1933년과 1935년 사이에 에트-텔에서 대대적인 발굴작업을 진행하여 후기 청동기 시대에 가나안 사회가 붕괴되기 1000년 이상 전인 초기 청동기 시대의 거대한 도시유적을 찾아냈다. 후기 청동기 시대의 토기 파편이나다른 주거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1960년대에 이 유적지를 다시 발굴했을 때도 결과는 같았다. 여리고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이 정복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대에 아이의 유적지에는 주민이 살지 않았다.
---<성경 : 고고학인가 전설인가> 104쪽~105쪽 -
초기 청동기 시대 BCE 3500~2200
중간 청동기 시대 BCE 2200~2000
중기 청동기 시대 BCE 2000~1550
후기 청동기 시대 BCE 1550~1150 (바이블에 기초한 여호수아 정복전의 시기)
철기시대 1기 BCE 1150~900
철기시대 2기 BCE 900~586
바벨로니아 시대 BCE 586~538
페르시아 시대 BCE 538~333
---<성경 : 고고학인가 전설인가> 33쪽 ---
-----
아무도 살지 않던 아이성에서 정탐-전초전 패전-화형식 거행-야훼의 작전지시-매복 성공 및 12000명 학살을 했다고 진술하는 바이블에 따르면, 야훼의 명령을 받은 여호수아와 아이들은 폐허 위에서 뻘짓을 꽤 심하게 한 모양입니다. ^^
댓글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