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역사 뿌리 부정하는 개독 여자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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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중요한건 어차피 토론, 말싸움이라는건 서로서로 결국 끝없는 싸움이라는 겁니다
[출처] 디오티마여신님께... 꼭 보세요 (안티와 예수의 대화) |작성자 반민족개독쓰레기
진짜로 궁금해서 물어보는건데
이렇게 생각하신다면 왜 하세요?
단군신화 붙들고 구약성서랑 비교하는 환빠랑 대화하기가 싫습니다. 애초에 비교할걸 비교해야지 말입니다
단군신화와 성경이랔
http://blog.naver.com/tatiros66/100159716513?copen=1&focusingCommentNo=6908429
댓글 잘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환단수나 신시가 위치는 확인이 됬습디까?
규원사화 환단고기 붙잡고 자폭하기 전에 정신차리시기 바랍니다.
적그리스도 한테 빌붙어 자료 챙기는 인간들이 무엇이 걸림이 되겠습니까?
그럼 저도 역시 똑같이 얘기해 볼까요?
유대신화 붙들고 우리 민족 신화랑 비교하는 정신나간 유대, 이스라엘 빠랑 대하하기 싫습니다. 애초에 비교할걸 비교해야지 말입니다 ㅉㅉㅉ
그리고 전 환빠는 아니에요 환단고기도 100% 믿는건 아니니까.. ㅋㅋ
반민족개독쓰레기 음 비교할걸 비교해야지 말입니다.
단군신화는 역사도 아닙니다. 그냥 가쉽일 뿐입니다. 곰부족 호랑이부족 운운하는 것도 사실 근거가 빈약한 가설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구약성서와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전혀 못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그 b.c7세기의 제와의 교역 시점이 비파형 동검이 등장하는 시점입니다. 따라서 1700년 간의 역사는 말 그대로 '없습니다.'
그리고 b.c7세기 경의 비파형동검과 미송리식토기 등을 가지고 강역을 논하는 것은 역사학이 아닌 전적으로 '고고학'에 속하는 부분입니다. 성서라는 풍부한 문헌자료가 존재하는 성서고고학과는 달리 전혀 맨땅에서 해딩해야 하는 것이 고조선시대의 고고학입니다. 사실 우리역사에서 b.c.3세기 이전은 선사시대입니다. 심지어는 비파형동검이 과연 고조선 고유의 것이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사실 국사교과서 초반부는 많은 이해관계가 맞물려 수정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반민족개독쓰레기 더욱 큰 문제는 이 단군신화의 등장 자체가 삼국유사가 쓰여진 시기 조금 전에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고려시대에 처음 등장했으며 그 사이 삼천년 동안 중간을 이을 수 있는 문헌이 전혀 없습니다. b.c.3세기 까지 소급해 갈 수 있는 구약성서의 최고 사본과(Dead Sea Scroll) b.c.7세기로 소급해 가는 오경의 민수기 일부의 사본과 비교해 볼 때 단군신화와 구약성서 사이의 중간단계의 문헌적 고증의 여부는 천지차이이며 원자료의 고대성을 풍부하게 알 수 있는 성서와는 달리 단군 신화는 최소한의 연구할 거리조차 갖추고 있지 못한 가쉽에 불과합니다.
혹평한다면 단군신화는 단순히 평양지방의 완벽히 '창조된' 지역설화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환단수니 뭐니 태백이니 신시니 아사달이니 왕검성이니 '단 한 곳도' 위치가 비정되지 않았습니다. 반면 성서의 지리학은 매우 방대한 자료를 구축하고 있다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반민족개독쓰레기 오르도스식 동검이나 도씨검과는 다른 검몸,손잡이,검자루 맞추개의 삼단 구조에 검자루와 자루머리에 기하문이 있는 곡인의 날을 가진 비파형 동검을 두고 언듯 고유의 양식을 가진 우리의 동검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도 하나의 착각입니다. 일단 비파형 동검이 출토되면 고조선이라는 논리를 펴 본다면
요서지방 조양시를 중심으로 해서 동으로는 길림시 북으로는 내몽골이민河 서로는 내몽골 적봉시 남으로는 한반도까지 그야말로 초거대국가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요서지역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하가점하층문화(내몽고 적봉시를 중심으로 요령성 대른하 중상류 노합하유역을 중심으로 하북성의 조백하 유역과 길림성 나만 곤륜을 거쳐 요하유적까지 아우르는 지역에서 나타나는 문화)의 한 형태를 보여주는 오한기지역 대전자(21-14세기)유적 같은 경우 채색토기와 나무곽을 가진 한반도의 문화와는 전혀 이질적인 문화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는 비파형 동검이 출토됩니다. 그것이 단 몇점이지만 말입니다. 게다가 이곳에서 나타나는 문화는 중국의 용산문화의 변종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반민족개독쓰레기 그보다 더 근래의 비파형동검 출토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곳의 발굴결과는 보다 더 충격적입니다. 8세기 경의 하가점상층문화로 대표적인 소흑석구나 남신근 유적 그리고 내몽골 자치구의 적봉시 철리목맹과 조양시 일대 하북성 승덕지구는 유목적 성향의 민족들이 거주했던 지역입니다. 당신이 이야기한 주나라가 힘을 잃고 유출되었다는 그 동이족은 동이족이 아니라 산융,영지,고죽,도하로 대표되는 북방 기마민족입니다. 그곳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은 韓문화라 부를 수 있는 것과 전혀 다른 문명을 요서지역에서 누리며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재야사학자라는 사람들은 더 나아가 요서지장의 우하량과 동산취 근처의 홍산문명을 고조선전단계로 오는 '우리의' 문명으로 설정함으로서 동북으로는 흑룡강 북으로는 액이고납河 서로는 난하에 이르는 대제국 고조선이라는 허황된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반민족개독쓰레기 긴말하지 않겠습니다. 일단 어떠한 고고학적 자료도 남기지 않은 단군에 비하여 다윗이라는 왕조 개창자 개인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만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일단 다윗 개인에 대한 실존문제는 이미 끝났습니다.
http://www.tanak.kr/tc/107
93년에 넬슨글룩성서고고학 연구소의 연구원이었던 당시 91세의 고고학자 아브라함 비란이 66년부터 시작된 27년 간의 발굴 끝에 발견한 일명 텔단 비입니다. 아람왕의 전승비로 추정되는 비석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람의 이름모를 왕이 이스라엘로 처들어가 '다윗가의 왕'을 죽였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비란이 이 비석을 발견한 후 1년후 발견된 두 조각은 이에 대한 해석을 더욱 명확하게 해주었습니다. 가운데가 갈라진 흔적이 있듯이 이 비석은 따로따로 발견된 것입니다. 그리고 왼쪽의 비석도 5-6행 사이가 파열된 것이라 두 조각으로 발견되었습니다. 빨간색으로 칠한 왼쪽의 7행은 레쉬,멤으로 람으로 읽고 밑의 세글자는 이야로 읽습니다.
반민족개독쓰레기 그렇게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각각의 글자 옆에 있는 베트,레쉬로 읽을 수 있는 아들이라는 공통된 단어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파열된 부분 앞이 하나는 '여호' 하나는 '아하ㅅ' 인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비석은 아람왕 하사엘이 기록한 것으로 여호람과 아하시야가 일석이조라는 말이 어울리듯 후임자 예후에게 한번에 척살당한 사건과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사엘에게 당한 여호람과 외삼촌의 문병을 왔다가 살해당한 아하시야는 실존인물이 됩니다. 아하시야의 어머니가 아달랴 즉 여호람의 누이었으므로 이 때는 어느 때보다 남 북 왕국이 친했던 시기입니다.
왕하 8:29-30
그가 아합의 아들 요람과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아람 왕 하사엘과 더불어 싸우더니 아람 사람들이 요람에게 부상을 입힌지라 요람 왕이 아람 왕 하사엘과 싸울 때에 라마에서 아람 사람에게 당한 부상을 치료하려 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왔더라 유다의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아합의 아들 요람을 보기 위하여 내려갔으니 이는 그에게 병이 생겼음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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