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설?, 삼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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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라 늦게까지 영화를 보다가 들어와 봤는데,
성경은진실님이 제게 질문글을 남겨 놓으셨군요.
인간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인간은 통일적인 전체인가, 아니면 2개 혹은 3개의 구성 요소들로서 이루어져 있는가?
인간이 복합적인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그 구성 요소들이란 과연 무엇인가?
성경적으로, 우리가 인간의 구조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문제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기독교 신학은 헬라 철학의 전통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기독교 신학이 존재의 문제들 및 존재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관한 지속적인 관심을 포함하여 왔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스콜라주의 신학자들은 인간이 각각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몇몇 실체들로 이루어진 복합체라고확신하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실체들이 인간 존재를 구성하고 있는가?
스콜라주의 전통에 서 있는 개신교 신학자들은 두 가지 기본적인 대안에 이끌려 왔습니다.
개신교의 보편화된 견해는 이분설과 삼분설입니다.
이분설은 육체와 영혼이고, 삼분설은 육체와 영과 혼입니다.
삼분설
삼분설은 육체, 혼, 영으로 구분합니다.
삼분설의 상당 부분은 희랍의 형이상학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삼분설의 토대는 일부 성경의 문단들이 근거가 됩니다.
삼분설의 주요 토대는 데살로니가전서 5:23, 히브리서 4:12, 고린도전서 2:14-3:4입니다.
살전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영은 헬라어 프뉴마(pneu'ma), 영어로 spirit입니다.
혼이란 프슈케(yuchv)이며 영어로 soul입니다.
몸이란 소마(sw'ma) 영어로 body입니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고전 2:14-3:4이 삼중적 구분을 시사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인간의 인격을 “육에 속한” “비영적인” “영적인” 부분으로 구분합니다.
삼분설은 교회사 초기의 알렉산드리아 교부들 사이에서 특히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오리겐, 그레고리의 닛사에게서 발견됩니다.
그러나 아폴리나리우스가 자신의 기독론을 세울 때 삼분설을 사용한 뒤에 이 이론은 불신을 받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그의 기독론을 이단으로 정죄하였기 때문입니다.
일부 동방의 교부들이 이 입장을 고수한 것을 제외하고 대체로 인기를 얻지 못하다가, 19세기 영국과 독일의 신학자들을 통해서 다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분설
기독교 사상사에서 가장 폭넓게 인정받은 견해입니다.
인간은 물질적인 요소인 몸과 비물질적인 요소인 영혼으로 구성되었다는 주장입니다.
교회사 초기시대부터 제안되었다가 381년 콘스탄티노플 회의 이후에 이 사상은 점차 인기를 얻다가 마침내는 교회의 보편적인 신앙이 되었습니다.
몸은 인간의 육체적인 부분입니다. 그것은 죽는 인간의 부분입니다.
그것은 죽을 때 해체되어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혼은 인간의 비물질적인 부분으로서 죽음 이후에도 살아남습니다.
이 불멸의 본성이 인간을 다른 모든 피조물로부터 구분합니다.
이분설의 논증은 삼분설이 근거로 삼는 성경 구절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살전 5:23과 히 4:1에 나오는 개별적인 언명들 하나하나가 독립된 실재를 뜻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면 성경의 다른 구절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누가복음 10:27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여기서는 세 개의 실재가 아니라 네 개의 실재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 네 개의 실재는 살전 5:23 등에 나오는 세 개의 실재와 일치하지 않습니다. 혼이라는 단어만 일치합니다.
더욱이 혼과 영은 동물창조를 가리키는데 사용됩니다.
전도서 3:21은 짐승의 혼에 대하여 말합니다.
또한 영과 혼은 동의어로 사용됩니다.
눅 1:46-47,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마 6:25에서는 생명, 10:28에서는 몸과 혼, 전도서 12:7과 고전 5:3,5에서는 몸과 영이 인간의기본적인 구성 요소로 언급됩니다.
죽음은 혼을 포기하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하고(창 35;18; 왕상 17:21; 행 15:26), 영을 포기하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때때로 혼이라는 단어는 인간의 자아 또는 생명과 동의어로 쓰이기도 합니다
마 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영이 번민한다고도 말하고(창 41:8; 요 8:21), 혼이 번민한다고도 말합니다(시 42:6; 요 12:27).
몸을 혼/영과 대비시키는 구절들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혼은 죽일 수 없고 몸만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혼과 몸을 둘 다 멸할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라고 명합니다(10:28).
마찬가지로 야고보는 행함 없는 죽음 믿음을 영혼이 없는 몸에 비유합니다(약 2:26).
전도자는 “흑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전 12:7)라고 씀으로써 우리의 존재론적인 본질에 대한 통찰을 제공해 주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살전 5:23에서 바울은 보완적인 표현을 통하여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케 하시리라”는 표현을 강조하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이 표현 안에는 인간 실존의 다양한 국면들이 요약되어 있으며, 바울은 거리낌없이 영과 혼을 나란히 언급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이 두 요소를 명백히 구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두 개의 다른 실체를 생각하지 않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곳에서 바울은 인간이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롬8:10; 고전 5:5; 7:34; 고후 7:1; 엡 2:3; 골 2:5).
히 4:12의 말씀을 내적 인간을 꿰뚫는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영과 혼이 마치 두 개의 다른 실체이기도 하듯이 양자를 분리한다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이 말씀은 단지 마음의 사유와 의도를 나누고 있을 뿐입니다.
성경적으로 보자면, 인간의 구성적 실체는 이분설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할 것입니다,
다만 이러한 구분적 해석은 주님의 구원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며 사람의 해석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이미 성경내부에서도 이분설,삼분설, 심지어는 사분설까지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흔히들 성경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쓰여진 글이므로 무오하다"라고 합니다만,
신앙의 근간인 영혼에 대해서도 명확하지 않음을 알 수 있읍니다.
내가 겪고 있는 혼란스러움은 결국, 성경만으로는 절대로 답을 얻을 수 없다는것입니다.
성경의 내용 자체가 여러갈래로 해석이 가능하므로 여러 종파가 생길 수 밖에 없읍니다.
해서, 이것저것 과학서적, 철학서적, 역사서적, 심지어 안티님들의 의견까지도 들어보고자 하는것입니다.
현재까지 제 나름대로의 결론이라고 한다면, 믿음과 실제는 다를 수 밖에 없으며, 종교는 종교로만 생각해야 한다는 겁니다.
댓글목록



성경은진실님의 댓글의 댓글
성경은진실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잘 읽었습니다.
결론은 아직 잘 모른다는 것이군요.
설교자라는 닉네임에 "하나님이 계시다면"이라는 의문을 품고 있으니
아직 확신이 없는 상태인것을 나타내고 있어서 닉네임이 어울리지 않는것 같습니다.
누구나 그런 의문의 과정을 거쳐서 확신과 믿음의 단계에 오르게 되지요.
기독교의 진리는 영원한 것이며 이 세상에 이것보다 더욱 큰 보화는 없습니다.
저는 안티에게서 배울 것은 사소한 것일뿐 중요한 것은 없다고 여기는데
님은 안티들에게도 진지하니 이런 모습을 배워야할지 의문이 듭니다.
진정한 민주주의자는 공산주의의 이론은 듣되 자신에게 수용하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민주주의가 공산주의보다 낫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기독교인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안믿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정녕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설교자님의 댓글의 댓글
설교자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설교자라는 닉, 의문이 어울리지 않는다는것은 님의 사고 체계를 보여주는 말이군요.
내가 닉네임을 설교자라고 하는것은 님처럼 무작정 우기는 것을 반대하는 설교자라는 의미 입니다.
자신만의 생각으로 남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걸 보니, 아직 님은 젊은듯 하군요.
그리고, 의문의 과정을 거쳐 확신과 믿음의 단계에 오른다는 말, 역시도 님만의 주장일 뿐입니다.
기독교의 진리가 영원한 것이라고 주장하시는데,
시편 104편 5절을 보면.. 땅의 기초를 두사..영원히 요동치 않게 하셨나이다..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는 내용이 맞는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성경은 진리를 담고 있을수는 있지만 전체가 진리라고 주장하는것 자체가,
님의 성경에 대한 편협함을 보여주는 것 밖에 안됩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성경이 전부 진리라는 시대에 뒤떨어진 주장을 하실것이 아니라,
성경속에서 진리를 찾아 내려는 노력을 해야 되는것 아닐까 합니다.
또한, 진정한 민주주의란,
공산주의 마저도 포함하는것이지,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이분법으로 보는 것도,
님은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프랑스 랍니다.
프랑스에는 공산당도 사회당도 있습니다.
님은 우리나라 상황으로만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판단하고 있는겁니다.
마찬가지, 님이 성경에 대해 이야기 하는것도 순전히 님의 생각만으로 판단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최소한, 님의 주장보다는 안티님들의 주장이 보다 합리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안티님들에게 배울것이 사소한 것이라고 감히 말하는건 성경표현으로 한다면
불쾌하실지 모르겠지만, 님은 정말 교만한 성품의 소유자라고 보여집니다.
안티님들이 님에게 미친 사람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겠군요.
잠언 13 : 10 잘난 체하면 싸움만 일으키고 슬기로운 사람은 충고를 받아들인다.
이 말을 상고하시길 권면합니다.

설교자님의 댓글의 댓글
설교자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여호수아 10:12~13 귀절에 있는 태양과 달이 멈춘 사건에서는,
태양과 달이 머무른 거리를 아시는지요?
아무리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해도,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 태양과 달이 있을 수 있을까요?
(무작정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주장하는 신도들을 많이 봤습니다.)
성경은 종교적인 맥락으로만 봐야 됩니다.
이걸 무조건 진리라고 주장하는 건,
믿음이 아니라 무식함입니다.
성경이 J문서, E문서, P문서, D문서등을 나누어 진다는 건 알고 계시겠지요?
서로 다른 전승을 한꺼번에 엮어 놓은것이 성경입니다.
전승은 왜 그렇게 분리가 되었을까요?
모든 근거, 증거를 무시하고 무작정 진리라고 하는건 믿음이 아니라 우기기 입니다.
문서비평, 문서 비교학이 왜 생겼을까요?
그리고, 안티님들이 이러한 내용을 모를까요?
님은 안티님들 뿐만 아니라, 성도들, 심지어 자신까지 속이면서 믿음이라는걸 유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외람되지만, 님은 믿음이라는 단어에 연연하고 있을 뿐입니다.












설교자님의 댓글
설교자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성경은진실님.
고린도전서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기독교의 본질은 사랑이라고 합니다.
님은 믿음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니,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사랑은 없고 맹목적인 믿음만 강조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목사님은 헌금으로 믿음을 평가하려고 하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믿음은 약할지라도, 사랑이 있는 사람이 진짜 기독교인 아닐까요?
예수님의 가르침이 믿음일까요? 헌금일까요? 사랑일까요?
님이 안티님들에게 주장하는건,
겸손함도, 남을 사랑하는 모습도 아닌,
오로지 님의 믿음의 크기에 대한 교만스러운 자랑뿐입니다.
그래도 자신만 옳다고 하시려나요?
그래도 자신만이 하나님을 제대로 만난 영혼이라고 주장하시려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