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훼의 실체]전쟁을 가르치는 신, 야훼
페이지 정보
본문
개독들은 하나같이 야훼가 평화를 좋아하며, 사람을 사랑하는 신이라고 한다.
이런 신의 모습은 인간이 늘 바라는 신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 삶이 항상 평화롭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바램이 아닐까 한다.
그러면, 야훼는 정말 전쟁을 싫어하고, 평화를 좋아하는 신일까.?
사사기를 보자.
개독의 바이블에서는 "사사기" 로,카독의 그것에는 "판관기"로 되어 있는 부분이다.
사사기(판관기)3장
1: 가나안 전쟁을 겪지 못한 이스라엘 사람을 빠짐없이 시험하기 위하여 야훼께서 남겨두신 민족들이 있다.
2: 그 목적은 대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알아보시려는 데 지나지 않았다. 일찍이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쟁을 가르치시려는 것이었다.
어떤가.?
야훼는 가나안 전쟁을 모르는 평화 세대를 위해,
전쟁을 가르치려고 적군을 남겨 놓았다고 한다.
사랑을 가르치는 방법은 사랑해 주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며,
전쟁을 가르치는 방법은 역시 "전쟁"이 가장 훌륭한 방법임에는 틀림없다.
거기에 덧붙여 야훼는 전쟁을 모르는 사람들 모두 빠짐없이 가르친다고 했다.
여기서 좀 더 생각을 해보자.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이 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식,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야훼는.?
모든 인간을 만든것은 야훼라고 한다.
그런데, 야훼는 특정 민족을 편애하여, 늘 그들 편을 들고 있다.
거기에 전쟁을 가르친다고 까지 한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들끼리 싸운다면, 어찌할까.?
대부분의 부모라면,
자식들이 싸우는 것은 좋아하지 않을 것이며,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가르치려 노력할 것이다.
바이블을 보자면,
늘 전쟁이야기가 나온다.
전능한 야훼가 평화를 좋아하고, 전쟁을 싫어한다면,
피조물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사이좋게 지내게 만들수 있지 않았을까.?
야훼가 전능하지 못하거나,
전능하다고 해도 전쟁을 즐기는 신임에 틀림없으리라.
이런 신의 모습은 인간이 늘 바라는 신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 삶이 항상 평화롭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바램이 아닐까 한다.
그러면, 야훼는 정말 전쟁을 싫어하고, 평화를 좋아하는 신일까.?
사사기를 보자.
개독의 바이블에서는 "사사기" 로,카독의 그것에는 "판관기"로 되어 있는 부분이다.
사사기(판관기)3장
1: 가나안 전쟁을 겪지 못한 이스라엘 사람을 빠짐없이 시험하기 위하여 야훼께서 남겨두신 민족들이 있다.
2: 그 목적은 대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알아보시려는 데 지나지 않았다. 일찍이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쟁을 가르치시려는 것이었다.
어떤가.?
야훼는 가나안 전쟁을 모르는 평화 세대를 위해,
전쟁을 가르치려고 적군을 남겨 놓았다고 한다.
사랑을 가르치는 방법은 사랑해 주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며,
전쟁을 가르치는 방법은 역시 "전쟁"이 가장 훌륭한 방법임에는 틀림없다.
거기에 덧붙여 야훼는 전쟁을 모르는 사람들 모두 빠짐없이 가르친다고 했다.
여기서 좀 더 생각을 해보자.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이 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식,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야훼는.?
모든 인간을 만든것은 야훼라고 한다.
그런데, 야훼는 특정 민족을 편애하여, 늘 그들 편을 들고 있다.
거기에 전쟁을 가르친다고 까지 한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들끼리 싸운다면, 어찌할까.?
대부분의 부모라면,
자식들이 싸우는 것은 좋아하지 않을 것이며,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가르치려 노력할 것이다.
바이블을 보자면,
늘 전쟁이야기가 나온다.
전능한 야훼가 평화를 좋아하고, 전쟁을 싫어한다면,
피조물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사이좋게 지내게 만들수 있지 않았을까.?
야훼가 전능하지 못하거나,
전능하다고 해도 전쟁을 즐기는 신임에 틀림없으리라.
사람은 종교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종교는 사람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댓글목록

